"당신이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면 세상을 부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이 나쁘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순응하면 아무 희망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들은 더 대담해지고 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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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지아 장커

저는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싼 값에 하루 종일 영화를 틀어주던 비디오떼끄와 같은 곳에서 홍콩영화를 보았습니다. 그 시절 내가 본 홍콩영화는 홍콩사람들이 본 영화보다 많을 겁니다. 너는 그렇게 홍콩영화를 좋아하면서 왜 막상 너의 영화는 지루하게 찍느냐고 한 친구는 제게 물었습니다. 가만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요즘은 모든 게 빨리 변화합니다. 시간의 흐름은 늘 같은데 요즘의 빠른 흐름 때문에 원래의 시간이 가지고 있던 느낌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저의 영화가 느리게 움직이는 것은 그와 같은 이유입니다. 원래의 시간이 가진 느낌을 담고 싶었습니다. 원래의 시간이 가지고 있는 움직임은 그런 것입니다.


ㅡ 2007.07.28 필름포럼 관객과의 대화에서


+ 방명록으로 유용합니다 :)


SAVE PALESTINE! 팔레스타인에 평화를!

by sesism | 2009/12/31 23:59 | blah blah | 트랙백 | 덧글(77)
빛과 그늘 속 해변의 카프카
<해변의 카프카>를 읽고 있다. 상권의 한 챕터를 남겨두고 맨 앞장에 남겨진 서명을 한참동안 뚫어지게 보았다. 앞장엔 '051201'이라는 숫자와 오빠의 이름이 적혀 있는데, 숫자가 의미하는 날짜가 책을 구입한 때인지 완독한 때인지는 알 수 없으나 오빠의 손을 거친 책들엔 모두 이런 식으로 서명이 남겨져 있다. 죽은 자의 서명이라니 묘하기도 하다. 책 앞장에 날짜와 제 이름을 적을 때 얼마 안 가 자신의 생명이 다할 것이란 예감을 아주 조금이라도 할 수 있었을까. 내가 가진 책 절반이 같은 서명인데 오늘따라 유독 마음에 박힌다.

생각하면 할 수록 불쌍하다. 엄마는 오빠가 아픈 것도 중요했지만 살림을 꾸려나가는 것도 무척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래도 당장 어떻게 되지는 않을 테니 장기간의 치료를 위해서는 돈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낮에는 간병인을 두고 일을 다니셨다. 간병인은 병원과 연계된 사회단체에서 오신 분이라 사례금은 없었지만 종일 오빠 옆에 붙어있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엄마는 늘 마음이 급했다. 일이 끝나면 병원으로 달려갔다가 밤 늦게 집에 오시고 다시 아침 일찍 일을 갔다가 일이 끝나면 병원으로 달려가고... 몸도 피곤하고 마음도 편치 않은 일상이었다. 매우 깔끔한 성격의 오빠는 오빠대로 전혀 모르는 아주머니께 도움을 받는다는 사실이 불편했고 아주머니도, 엄마도 없는 밤엔 무언가 필요한 것을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것 또한 불편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한밤중에 화장실이 급해서 가는데 그때는 몸이 점점 나빠지는 시기라서 뇌와 신체간의 신호가 그다지 정상적이지 못했다. 화장실에 가기도 전에 복도에 변을 다 흘린 것이다. 걷는 것도 불편한데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혼자 화장실에서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고 복도에 쭈그리고 앉아 변을 치웠다. 그리고 20대 남자의 체면으로는 그걸 누가 발견하는게 몹시 겁나는 일이었을 것이다. 얼마나 불안하고 조급하고 비참했을까. 오빠를 생각하면 미안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이 일을 떠올리면 가장 마음이 아프다.

2006년 이맘때 급격히 악화되었으니 지금 딱 내 나이다. 내가 지금 몸이 너무 아프고 죽음이 멀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다면 마음이 어떨까. 겪지 않은 일이므로 짐작하긴 무척 어렵지만 아마 꽤 두려울 것이다. 서른 살. 좋은 나이 아닌가. 억울하기도 할 것이다. 앞으로 두 달 후면 나는 오빠가 살지 못한 나이를 살게 된다. 오빠보다 삼 년을 늦게 태어났지만 오빠의 정지된 나이를 앞지르고 그 두 배는 넘는 세월을 살아가게 된다. 사고를 당하거나 병에 걸리지 않고 이대로 나이든다면 말이다. 오빠는 언제나 서른인데 나는 올해가 지나면 그 나이를 넘어 오빠가 해보지 못한 많은 경험을 할 것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시집장가를 보내고 그렇게 나이를 먹다가 부모님을 보내드릴 것이다. 인생의 동지를 잃었다는 사실을 고비마다 실감하게 될 것이다. 많이 보고 싶고 미안하고 생각이 난다. 사실 그다지 사이좋은 남매는 아니었는데 그때문에 여전히 원망도 하지만 옆에 있었으면 참 좋았겠다, 싶다.
by sesism | 2009/11/06 16:52 | blah blah | 트랙백 | 덧글(2)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
나이 서른에 아홉 번의 연애를 했는데도 아직 사람과 사랑에 대해 모르겠는 건 뭘까. 추석 즈음에 왠지 그런 건 내가 제일 잘 알 것 같다며 용한 점집을 물어왔던 C는 문자질이 답답했던지 전화를 걸어와 여자친구와의 관계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되는데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한숨만 쉬어댔다. C는 내게 이제껏 놓쳐서 후회한 사람이 없었는지 물었는데, 후회되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는 좀 생각해봐야겠지만 사람을 놓치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후회는 맞지 않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한 번씩 돌이켜 봤을 때 내가 사람과의 인연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건 아닌지, 그래서 작은 일에도 화를 내고 싫증을 내다보니 이렇게 많은 연애를 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 스스로의 경박함이 조금 많이 안타깝다.

고등학교 때 친하게 지냈다가 졸업 이후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친구의 미니홈피에 들어갔다가, 편입을 했는지 어쨌는지 명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다니며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악세서리를 매달고 해외여행을 다니면서 지내는 친구의 모습을 보니 낯설기도 하고 부럽기도 해서 화가 났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 준 교훈을 벌써 잊었는가. 나는 늘 내가 패배자라고 생각했고, 내 인생에 자신이 없고 부끄러웠으며, 대상이 또렷하지 않은 죄책감을 가지고 살았었다. 그러다 최근에 그리고 뒤늦게 <삼미...>를 읽고, 나는 패배한 것이 아니라 무려 내 몫의 자유를 누려왔던 것이라는 커다란 위로를 얻고 참으로 행복했었다. 그런데 왜 또다시 그런 한심한 질투와 자책에 휩싸이냔 말이다. 부러우면 지는게 아니라 부러움 자체가 안되는 거다. 그럴싸한 회사에 내 시간을 담보잡힌 댓가로 번지르르하게 치장하면 뭐하나. 종일 학교에서 공부한 것도 모자라 늦은 시간까지 학원에 박혀 있으면 뭐하나. 그래봐야 되는 건 월급쟁인데. 나는 그냥 영화나 실컷 보면서 살란다. 통장의 잔고는 적어도 돈으로 바꿀 수 없는 시간은 많으니까. 게다가 인생의 모든 날은 휴일이라니까.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좀 그랬다. 영화 한 편을 만들 때 투입되는 많은 사람들의 노동을 생각하면 영화에 대한 소감을 문장 몇 줄로 끝내는 것은 지양해야 하지만 내가 영화를 보고 나서도 어디다 얘기할 데가 없어서 그렇다. 관객들 반응도 좋았고 영화도 그만하면 나쁘지 않았지만 여성 대통령이 직면할 수 있는 문제 중 영화로 다룰 만한 소재가 고작 그것뿐이었을까. 에피소드도 그렇고. 게다가 한경자 대통령은 여성이라는 카테고리에 가두어 두면서 차지욱 대통령은 왜그렇게 멋있는 건데. 정장 입고 머리 올린 고두심씨보다는 <가족의 탄생>에서 청카바 입은 고두심씨가 훨씬 좋다.
by sesism | 2009/10/27 13:16 | blah blah | 트랙백 | 덧글(28)
어지러운 세상 속에 내 세계만 평화롭지만 외로운
감히 '영화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내 그것은 타인들의 이해가 불가했다. 하루에 두세 편의 영화를 본다고 했을 때 뭐하는 짓이냐거나 때로는 미쳤냐는 말도 들어봤다. 나는 미치지 않았으니까 상관없지만 그래도 은근한 상처였다는 걸 그들은 모를 걸? 서울아트시네마 혹은 여타의 영화제들에서 마주치는 낯설고도 무표정한 얼굴들에서 동질감과 동지애를 느끼는 것은 그래서 특별했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면 가까운 지인들보다도 더 말이 통하는 풍요로운 대화가 될 것 같다고 상상도 했다. 어쩌면 나와 지인들간의 이해시키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한 탓인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리 마빈을 모르고, 로버트 미첨을 모르고, 세르지오 레오네를 모르고, 빈센트 미넬리도 모른다. 어차피 나도 잘은 모르기 때문에 말콤 맥도웰을, 장 르누아르를, 장 피에르 멜빌을 재주좋게 설명할 수도 없다.

어쩌면 영화에 대한 애정은 사랑이기보다 집착인지 모르겠다. 게다가 뭘 해야 좋을지 모르겠는 시간을 어쨌건 해결해주니까 나는 극장으로 가고 거기서 내가 소망하는 세계를 본다. 아니 어쩌면 이것은 거짓말이다. 어떤 영화들은 참으로 깝깝해서 나의 인생도 덩달아 깝깝해진다. 그리고 때로는 정말 처절하게 외롭다. 홀로 극장에 가서 두세 편의 영화를 보다 보면 어떤 날은 한 마디도 하지 않을 때가 있는데, 내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면 진짜로 외로움에 사무치게 된다. 그래도 언젠가 타르코프스키 영화에서 보았던 풀밭의 바람이나, 보니와 클라이드가 점처럼 파묻혔던 갈대밭의 변화하는 햇빛은 잊혀지지 않는 참으로 특별하고 행복한 경험이다.

제3회 충무로국제영화제가 개막했다. 1회부터 참여한 '슈퍼스타' 회원으로서 내가 느끼는 점은 이 영화제가 갈수록 못나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대로 가면 칩스는 피프처럼 훌륭한 영화제로 자리매김하기는 커녕 피판처럼 점점 기대와 감흥이 사라지는 영화제가 될 지도 모른다. 부산을 가지 못하는 나에게 충무로영화제는 오매불망 그립다가 시작하면 행복하고 끝나면 헛헛하고 다시 오매불망 그리워지는 그런 영화제인데 칩스의 여러가지 미숙한 점은 그래서 너무나 안타깝고 두렵고 슬프고 아쉽고 서럽다. 이번에는 대부 원투쓰리와 살파랑을 제외하면 정말 마음이 조급해지는 영화도 몇 없다. 그래도 꾸역꾸역 예매는 해두었는데 전부 찾은 티켓을 집에 두고 오는 바람에 오늘은 빌리 와일더와 마릴린 먼로 만나러도 못 간다, 젠장.

내 오매불망한 마음을 이해받고 싶다.
by sesism | 2009/08/27 09:54 | blah blah | 트랙백 | 덧글(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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